2020 사순절-부활 새벽기도

4월 12일(부활절) 새벽묵상  선입견

○ 4월 12일 부활절  새벽 묵상
○ 사도신경
○ 찬송 160 무덤에 머물러
○ 성경 누가복음 24:1-12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5-6)
○ 묵상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모든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부활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부활 다시살다라는 뜻입니다.

마술은 속임수 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속임수인 줄 알기에 그 트릭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잘 찾지 못합니다. 왜 일까요? 
마술사의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시선 뺏기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한곳에 집중시켜 놓고 관심밖에서 속이는 일을 합니다. 
재미난 실험을 했습니다. 무대에서 마술사가 마술을 하는 동안 무대 배경을 여러 가지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관객들 중에 배경을 바꾸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인지 능력의 한계입니다. 내 생각이 한번 고정되면 그 외의 것은 발견하지도 깨닫지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상황들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선입견이라고도 합니다. 선입견을 가지면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이 지난 첫날 새벽에 예수님을 찾아 달려온 여인입니다. 그녀들은 안식일 때문에 예수님을 장례 치르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갖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녀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하였고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이 선입견과 예수님의 죽임이라는 사실에 맞추어진 관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녀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에수님이 살아계실 때 늘 가까이 교제하며 지내던 사람들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천사들에게 “사람들이 내 주님을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천사를 향해 뒤돌아 보았는데, “예수께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완전한 예수님의 죽으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을 때도 이렇게 찾을 때가 있습니다. 그저 우리의 마음에 위로를 받고자 하고 내 생각에 좋은 것을 취하여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그녀들에게 오늘 천사는 말합니다.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있는 자를 찾느냐? 

오늘 성경은 우리가 선입견을 가지게 된 이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6절의 말씀, 여기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말씀 그대로 받지 않고 내 욕망, 내 욕구, 내 소원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에수님의 말씀을 내 뜻대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그것이 선입견입니다. 

부활절 아침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선입견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7-8절 말씀입니다.  

○ 적용과 결단
오늘 내가 주님의 부활을 받아 들이지 못하게 하는 선입견이 무엇인가요?

○ 기도
주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아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기다리며 받아들이는 신앙으로 주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온땅에 주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확실한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게하소서
- 코로나19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부활의 소망으로 치유하여 주소서. 

4월 11일(토) 죽음의 날 

○ 사도신경

○ 찬송 143 웬말인가 날 위하여

○ 성경 막 15:42-47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6)

○ 묵상
무덤에 계신 예수님 앞에 내가 서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금요일 저녁 일몰과 함께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그 때까지는 예수님의 시신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범죄자를 처형한 경우와 같이 치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시신이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정말 당돌하게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요청했습니다. (43)
요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와 사랑을 담아 새로운 세마포를 사서 정성껏 예수님의 시신을 쌉니다. 그리고 바위 속에 마련한 아무도 장사지낸 적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하고 장례를 지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존경받는 공회원이라 했습니다. 유대인으로 존경받는 그의 신분과 직책이었기에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결단이었지만 또한 그 직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에 모든 형편이 지금 주님의 거룩한 일을 이루기 위하여 맡겨주신 것으로 믿고 순종할 때 주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집니다.

고난 주간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죽음의 날입니다. 에수님은 하루종일 무덤 속에 계십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부활은 죽어야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입니다. 온전히 죽지 않고는 다시 살아 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머무르는 신앙이 아닌 부활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우리는 내일을 기다립니다. 
내일 장사된지 삼일만에 다시 사신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죽음이 바로 우리 가운데 참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며칠 전 나누었던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오늘 주님은 완전한 죽음으로 전 인류를 향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함께 죽으신 주님을 믿고 죄에 대한 죽음을 경험할 때 우리도 비로소 주님과 함께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살기가 등등했던 자신의 의를 이루던 삶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며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그 죽음을 지나 그는 부활의 확실한 소망안에 구원받는 성도로 사명을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이 죽음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온전히 죽어지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과 함께 부활의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 적용과 결단
무덤 속에 계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내가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하는 죄의 고백을 합시다. 
내가 지금 처하여 있는 모든 상황의 조건들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준비하는 헌신의 기회로 삼기를 결단합시다. 

○ 기도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을 살게 하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나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온전히 믿고 죄에 대하여 죽게 하소서
-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상에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지만 부활의 소망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추게 하시고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이 용기를 얻고 이기게 하소서
- 교회들이 부활절 예배를 드리게 될텐데 주께서 교회를 보호해 주셔서 감염자가 생기기 않게하시고 교회도 스스로 조심하며 지혜롭게 대처하여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 부활의 소망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나가는 우리 성도들 되게 하소서

4월 10일(금) 성 금요일 - 가상칠언

○ 4월 10일 성금요일 새벽 묵상
○ 사도신경
○ 찬송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 성경 눅 23:26-3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 묵상
십자가에서 주님은 자신을 못박는 원수들을 용서하심을 보며 어떤 생각이 나나요? 

예수님은 사형을 당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의의 재판을 받고, 죄인처럼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십니다. 오늘 새벽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을 잠시 묵상하려합니다. 

1. 예수님은 가장 먼저 자신을 못박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하나님의 뜻을 모른채 자신의 욕심과 이기적 충동으로 예수님을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살지 않습니까? 말씀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채 나의 욕심을 좇아가는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그런 나를 향해 사하여달라고 말씀하십니다. 

2. 예수님은 양옆의 강도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
누구라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을 바라보며 긍휼을 구하는 자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이며 용서이며 구원입니다. 오늘 나와 낙원에 있기를 말씀하시는 주님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3. 이제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보며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집에 모시니라( 요 19:26-27)
예수님은 몸이 찢어지고 피를 쏟으시는 중에서도 어머니를 돌보며 제자에게 모실 것을 부탁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4. 예수님은 네 번째로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6)
수요일 나눈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받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버림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난데 예수님은 그런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앞에 버림받는 단절의 슬픔을 견디셨습니다. 예수님이 버림을 받음으로 이제 우리는 버림받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5. 다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다섯 번째 말씀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 19: 28)
못 박히신 채 6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동안 예수님은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극심한 출혈은 심한 두통과 함께 갈증을 동반합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위한 언약의 피를 다 쏟아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한 목마름입니다. 주님의 목마름으로 우리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수를 얻게 되었습니다. 

6.  여섯 번째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 19:30)
예수님은 그 생명이 떠나가실 때 비로소 다 이루었다 선포하셨습니다. 모든 구약의 율법과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진 순간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성취는 우리에게 부여된 새생명입니다.

7. 마지막 말씀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 23:46)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의 영혼을 붙드시고 책임져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손에 영혼을 맡기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이 가상 칠언을 묵상하시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온전히 이루시기 바랍니다. 

○ 적용과 결단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가운데에서도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셨습니다. 주님의 핏값으로 생명을 얻은 나는 오늘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습니까? 

○ 기도
주님,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말씀에 순종하여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깊이 새기며 그 사랑안에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 십자가 이후에 주님의 부활이 있음을 알기에 고난과 환란의 때에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며 순종하게 하소서. 
- 코로나19의 모든 고난도 십자가의 은혜 안에 부활의 생명처럼 회복되게 하여 주소서

4월 9일(목) 성목요일 - 애찬식 

○ 사도신경
○ 찬송 228 (오 나의 주님 친히 뵈오니)
○ 성경 눅 22:14-23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14-15)
○ 묵상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베푸신 식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유월절을 기념하며 잡은 양의 피로 허다한 죄를 씻는 은총을 입으려고 많은 인파가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마음으로 정한 십자가의 길로 떠나십니다. 자신의 때를 이미 아셨던 주님은 자기 곁에 늘 있던 제자들과 나눌 의미 있는 식사를 간절히 원하며 계획하셨습니다. 그 식사의 날이 목요일 저녁 바로 오늘 저녁입니다. 

16절의 말씀을 보면 이 식사는 다시 제자들을 대할 수 없음을 아신 주님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여느 때와는 다른 엄숙함으로 식사를 합니다. 

떡을 떼시며 감사기도를 하시고 친히 나누어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잔을 들어서 기도하신 후에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부어지는 내 피요, 새 언약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영원히 지킬 거룩한 예식인 성찬식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시고 나누어주신 영적인 양식  즉 주님의  사랑, 자비, 긍휼, 위로, 생명, 회복, 치유와 격려가 담긴 소중한 영의 양식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식탁에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삶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이 거룩한 아침에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분이 친히 음식이 되어 마련하신 거룩한 생명의 식탁에 참여합시다. 성찬은 감사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식탁입니다. 

저를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빵을 두 손으로 드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빵을 찢으시며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 내 몸이다. 빵을 찢으십시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찢기시는 주님의 몸을 기억하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나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셔서 그 몸을 찢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주님의 뜻을 깊이 새깁니다. 주의 몸으로 베푸신 영적 양식을 먹음으로 주님의 몸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찢으신 주님의 몸을 드시기 바랍니다. (다 드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자 이제 잔을 두손으로 드십시오. 예수님께서 식 후에 잔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주님의 피를 마실 때 우리는 새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되 다시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피를 받습니다. 이 피를 마시고 성령의 충만으로 새언약 안에 주님의 형상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주님의 새언약의 피를 마시겠습니다. 

생명의 식탁에서 주님의 생명을 공급받고 날마다 성령의 충만으로 새 언약을 행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 적용과 결단
성찬의 의미를 기억하고 오늘도 세상가운데서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자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묵상합시다. 

○ 기도
주님, 성찬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몸을 입고 성령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날마다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영적 식탁을 기억하고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소서
- 코로나 19로 지치고 상한 몸과 마음을 서로가 위로하고 힘이되어 주어 이기게 하소서
-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나누어지는 곳에 회복과 치유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베푸신 성찬의 은혜가 온땅에 부어져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도 고쳐 주시옵소서

4월8일(수) 고난주간3 새벽묵상 순종의 삶

○ 사도신경
○ 찬송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 성경 눅 22:39-46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42)

○ 묵상
내 삶에 더 나은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의 바람은 무엇일까요?

겟세마네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이지만 매일 읽고 묵상해도 매일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겪으시는 예수님의 갈등과 그것을 이기고 순종으로 나가는 힘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순종이란 내 생각과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기어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 순종의 바탕에는 언제나 ‘신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순종으로 시작해서 순종으로 마친다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분이 영광의 보좌를 떠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부터,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에서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히시며 지금 이 문제는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을 거스르지 않고 어머니의 뜻을 들어드린 일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마지막 여정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지금 요구되는 순종은 물을 포도주로 만들 때와는 차원이 다른 생명을 드려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위대한 사랑에 대한 순종의 요구 앞에서 기도함으로 이루어갑니다. 순종은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이루어집니다. 

위대한 순종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는 사람이 순종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39절) 
감산산은 예수님이 쉼을 가지는 곳입니다. (21:37) 그런데 예수님의 쉼은 잠을 자며 육체적으로 쉼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도 기도하시는 것처럼 홀로 쉼을 가지실 때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12에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와 같이 매우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도 산에서 밤을 새우시며 밤에 홀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순종의 순간 찾아오는 유혹과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예수님의 요청은 유혹에 빠지지 않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유혹을 이기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입니다. (42절)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지기를 결단하며 드리는 기도는 결국 일의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흘려야 할 피의 잔을 알려주며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과 포도주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알고, 그 죽음의 의미를 알기에 피하고도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버지께 그 결과를 맡기며 힘을 다하여 기도합니다. 

누가는 특별히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한다.그것은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였다는 말씀입니다.  (43절) .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그 뜻에 순종하기를 위하여 영적 싸움을 할 때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찾고, 구하고, 두드릴 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한 말씀도 기도할 때 우리를 순종의 길로 가도록 도우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 후에 담대하게 고난의 길이지만 영광의 빛으로 가득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 순종으로 길로 담대히 나아가길 바랍니다.

○ 적용과 결단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는 뜻을 생각하며 나의 뜻을 내려놓기를 기도합시다. 
○ 기도
주님, 신실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여 주소서. 

○ 오늘의 기도제목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어 예배 공동체가 회복되어지고, 경제가 무너지지 않게 하시고  일상의 삶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주소서
- 선교지를 코로나19로부터 보호하여 주시고 복음으로 고통받는 선교지가 위로받게 하소서

4월 7일(화) 고난주간2 새벽 묵상 (믿고 기도하고 용서하라)

○ 사도신경
○ 찬송 549 내 주여 뜻대로
○ 성경 막 11:20-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24)

○ 묵상
오늘 나의 기도는 무엇을 위한 기도인가요?

아침에 길을 갈 때 무화과나무가 말라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베드로가 어제 일이 생각이 나서 묻습니다. “주님,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습니다”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다음날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 시장하여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바라보시고 열매를 바라셨으나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저주하십니다. (11:12-14) 그리고 그 다음날 무화과나무가 말라 있었습니다. 

마가복음의 특징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후에 성전을 정결케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통해 깨닫게 하고 싶으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감람나무와 함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예수님이 길에서 바라보신 나무는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였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는 나무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나름대로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분주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을 지킨다고 열심을 내고 있었지만 그 안에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거룩한 열매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성전을 더럽힌 자들임을 말해주듯이 열매 없는 형식적인 신앙에 대하여 주님은 그 자체로 이미 저주받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은 사건을 통해 어떻게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열매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열매 없는 무화가나무가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열매 맺는데 자신들의 교만과 자기 스스로 세운 율법적 믿음이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믿음의 삶을 새롭게 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것은 첫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의심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23)
산을 옮기는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산을 옮기는 것보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24)
이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그 뜻에 순종되어지기를 구하는 것을 말하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성취되어 질 것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내 일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라는 관점으로 기도하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마지막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25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원수도 사랑해야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먼저 구하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아무에게든지 혐의가 있을 때 용서하는 순종이 뒤따라야 합니다. 믿음은 확신과 기도와 순종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언제라도 주님 앞에 믿음의 열매가 많은 무화과나무가 되도록 오늘도 믿고, 기도하고 용서하는 거룩한 삶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지금 나에게 찾아온 위기를 통해 나에게서 하나님은 무엇을 얻고자 하실까요? 

○ 기도
주님,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고 기도하며 순종으로 열매맺게 하여 주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분별하여 버리고, 주의 나라를 세워가게 하소서. 
-온라인 예배로 교회 내에서 서로를 정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서로를 용납하고 더 사랑하며 섬기게 하옵소서. 
-당연히 주어졌던 소중한 것들을 재발견하는 시간이 되어 교회와 가정, 친구 등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감사히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4월 6일(월) 고난주간 1 /성전을 새롭게

○ 사도신경
○ 찬송 254 내주의 보혈은
○ 성경 눅 19:45-48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 묵상
주님의 집인 교회가 ‘강도의 소굴’이 된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고난주간을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에 대하여 말씀을 나눕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성에 올라가셨을 때 성전으로 가셔서 성전을 정결케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성전이 부패하고 더러워졌습니다. 성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하고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 예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가슴 아파하시며 거칠게 행동하셨습니다. 
우리가 알던 예수님은 온화하고 다정하신 분이십니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며 축복하셨고, 수가성 여인, 삭개오, 음행한 여인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외면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투와 행동에서는 우리가 알던 예수님이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기도의 장소로 회복하고 백성에게 위로와 사랑과 공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고 재건하고 싶어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이 기록될 당시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입니다. 무너지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 빈터를 바라보면서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내고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욕망과 타락의 결말이 어떠한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함으로 그분의 뜻을 중심에 두지 않은 모습이 얼마나 허망하고 비참한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2020년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 한국교회를 그리고 서림교회를 돌아봅시다. 
주님의 성전이 혹시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요? 강도의 소굴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개인의 욕구와 탐심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보다 더 우선하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강도의 소굴이라 한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다 저마다 그만한 이유와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성전의 화폐로 교횐해주었고, 제사에 바칠 제물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먼 곳에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오는 동안 함께 데리고 온 제물은 거룩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흠없는 제물로 교환해야 했습니다. 성전의 화폐로 바꾸려면 환전소를 찾아가야 되는데 성전안에 있으면 편리했습니다. 따라서 성전에서 비둘기나 염소를 팔고 돈을 바꾸어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성전에 온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고 자부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숫양의 기름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예배의 정신이 빠진 인간의 편의와 그를 핑계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일이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하게 되었고, 경배하러 오는 사람들도 편리주의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 염소나 끌고 와서 성전에 바꾸면 되니까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그런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편리주의에 빠진 교회, 물질주의에 빠진 교회 성도들도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만민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새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영혼의 샘같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누구라도 소외당하거나 삶이 고난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생명의 강수가 흐르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성전의 회복을 바라며 거칠게 소리를 높여 상을 엎으시고 채찍을 휘두르시면서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쫓아내시는 주님의 모습, 오늘 우리를 쫓아내시는 목소리는 아닌가요? 

○ 적용과 결단
교회의 바른 모습을 생각하고 나의 신앙의 모습을 어떻게 새롭게 해야 할지 적어보세요 

○ 기도
주님, 우리 교회가 참으로 주님의 집,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모든 성도가 힘쓰게 해 주세요

○ 오늘의 기도제목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듯이 저희들 마음속에도 들어오시기 원합니다. 저희들의 주인이 되어 저희들의 삶을 이끌어 주옵소서.
2.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 악한 생각들을 끊어내게 하시고 하늘의 성품이 깃드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3.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수고하는 이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안이 임하여 주옵소서. 
4. 세계적 전염병이 되어버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하루 속히 종식될 수 있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돌아서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4월 4일 (토) 사랑하며 선대하는 교회

○ 4월 4일(토) 새벽 묵상
○ 사도신경
○ 찬송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 성경 눅 6:27-31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 묵상
사랑하며 선하게 행동하였을 때 오히려 상처받은 경험이 있나요?

미운오리새끼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혼자만 다르게생긴 오리새끼가 따돌림을 당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백조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외에도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과같이 유명한 작품을 쓴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교육을 받지 못해 철자법도 모르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훗날 그의 장례식에 덴마크 국왕과 왕비가 친히 참석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동화를 쓸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안데르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나에게 베풀어진 작은 복에 감사했습니다. 나의 가난도 복이라고 믿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역경은 나의 복이었습니다.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성냥 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 못생겼다고 놀림을 받았기에 「미운 오리 새끼」를 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홀로 광야의 길을 걷는다 해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한다면, 고통과 아픔의 이야기는 사랑의 이야기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원수까지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오히려 선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죄인 된 우리는 종종 자신의 관점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미원하고 심지어 원수를 삼기도 합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이유나 조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실 때,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실 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일방적이고 무조건 적으로 우리에게 쏟아 부어진 것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도 구원의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높이 들려 올려진 놋뱀을 바라보면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무가치한 인간의 죄악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에게는 원수라도 사랑하고 선대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나를 본받으라 하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고 우리도 사랑하고 선대하며 살아 갈 때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다운 열매로 가득채워질 것입니다. 

○ 적용과 결단
나의 가족, 이웃, 성도들의 약점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이야기 해보세요

○ 기도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하고 선대하며 살게 하소서.

○ 오늘의 기도제목
- 우리 삶에 부활의 새 생명에 합당치 않은 것들을 참회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고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며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 전염병으로 두려움과 염려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연약한 육체와 불안정한 문명사회의 한계를 깨닫게 하소서
- 국가적 재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셨던 소중한 것들을 깨닫고, 가정과 교회, 사회, 모든 것을 감사로 받고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하소서. 
-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이를 위해 수고하는 의료진들과 당국의 모든 봉사자들에게 능력과 평안을 주시옵소서. 

4월 3일(금) 끊을 수 없는 반전의 사랑

○ 4월 3일(금) 새벽 묵상
○ 사도신경
○ 찬송 433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 성경 롬 8:31-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5절)

○ 묵상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 때문에 원망했던 경험이 있나요? 

산골짜기 한 동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버려져 더럽고 냄새나는 강아지는 탈진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강아지의 목에서 ‘메리’라는 이름과 함께 “이 나라 왕에게 속한 강아지입니다”라 새겨진 이름표를 발견했습니다. 이 사실을 왕실에 알렸고 강아지는 왕실로 돌아가 고난의 시간이 끝나고 왕궁에서 왕의 사랑과 보호 가운데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만사가 다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 때문에 더 큰 위협과 고난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이 우리를 붙들어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러나’의 인생이 있습니다. 고난을 넘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바라보는 반전의 인생입니다. 우리도 코로나19의 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의 삶 가운데 그 어떤 어려움에서도 우리를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반전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적용과 결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믿음으로 넉넉히 이겨 낸 경험이 있나요? 

○ 기도
주님, 어떤 고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담대하게 하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코로나19로 인한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인 교회와 한국 사회 그리고 세계가 분열되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코로나19로 인해 교회의 공동체가 멈추었습니다. 이 고통과 시련을 통해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4월 2일(목) 버린돌이 머릿돌로

○ 사도신경
○ 찬송 369장 죄짐맡은 우리 구주 
○ 성경 눅 20:9-18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13절)

○ 묵상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한다고 생각하나요?

많은 사람들은 머니머니해도 돈이 최고라고 하는 물질 만능주의와 쾌락은 좋고 고통은 나쁘다고 보고 쾌락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쾌락주의를 따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조주빈!!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물질 만능주의의 극단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쾌락을 위해서 악한 일도 서슴지 않는 극단적인 양상이며 이것은 물질 만능주의와 쾌락주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 욕망의 마지막은 탐심의 늪입니다. 탐심과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이며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며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고,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하신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인 유대인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 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의 손을 내미실 때 뿌리칩니다. 그들의 행위는 탐욕을 그대로 다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횡포를 부립니다. 

오늘 본문의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을 보십시오. 이들은 예수님 시대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마땅히 환영하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입니다. 
그 아들을 죽일 때 무슨 마음으로 그랬을까요? 14절의 말씀을 봅니다.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도, 그 아들의 메시지도 거부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빼앗고자 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머릿돌은 건물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돌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버림받으셨으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골 1:3)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임합니다.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모든 악한 권세는 깨지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 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모든 악한 권세는 깨어질 줄 믿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완성되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앞에서 순종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왕성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 적용과 결단
스스로 인생의 주인 되어 태만하고 교만해진 내 모습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 기도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과 온유와 절제로 주님을 묵상하며 사순절을 보낼 수 있게 하소서
-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는 자영업자들, 직장인들, 자립대상교회들, 방역의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돕는 손길이 끊이지 않게 하여 주소서
교회를 지켜주시고 예배가 회복되어 맡겨주신 생명의 사명을 감당게 하소서. 

4월 1일(수) 포기하지 않는 사랑

○ 사도신경
○ 찬송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 성경 호 3: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1)

○ 묵상
고통과 어려움을 준 사람을 사랑할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소설 「대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펄벅 여사에게는 자폐증을 앓는 ‘캐롤’이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딸을 모델로 쓴 「자라지 않는 아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차라리 캐롤이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 어쩌면 캐롤에게는 그게 더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내가 겪었던 기대와 실망 고통은 또 얼마였는지.... ” 그러나 ‘엄마’는 결코 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딸 아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 캐롤이 없었다면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얕보는 허영과 오만 속에 빠져 살았을 것이다. 나는 내 딸을 ‘자라지 않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이 세상과 끝까지 맞설 것이다” 
이처럼 참된 부모의 사랑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사랑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1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수확물을 우상 바알에게 바치고 그 제사음식을 즐기는 음녀같은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한 가정에선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외간 남자와 여행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기도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성경은 그래도 여호와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호세아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본문의 말씀에서 죄악가운데 세상을 향하여 떠나간 우리에게 십자가의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네가 구원 받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 예수님은 모진 질고와 고통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사 53:5)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사 53:6) 이것이 각기 제 길로 간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아셨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 엄청난 고통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잠시 고난을 받았으나 결국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그 승리하심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영광을 향하여 믿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적용과 결단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인내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 기도
주님,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나를 포기 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믿고 힘들고 어려워도 십자가로 인내하게 하소서. 
-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온 세상이 예수 안에서 만물이 생동하고 소생하는 봄의 생명력으로 다시 충만하게 하소서 
- 교회가 모이지 못한다 하여도 성도들이 삶의 예배로 세상을 더욱 사랑하게 하시고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든 시도를 막아주소서. 

3월 31일 (화) 내 사랑하는 아들이여

○ 사도신경
○ 찬송 266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 공동기도
○ 성경 렘 31:15-22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0)

○ 묵상
정말 사랑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참고 기다려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로 생활하게 하십니다. 유다 백성의 희망은 산산조각 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처음부터 경고하셨던 말씀입니다. 
신 31:20 –22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22 그러므로 모세가 그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그들이 마음이 교만하여져 하나님을 떠나 그 땅에서 쫓겨 나고 땅이 황폐해지는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애곡’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라헬의 애곡이 무엇입니까? 야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그녀는 자식이 없어 마음에 깊은 괴로움으로 레아를 부러워하다가 요셉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형들의 거짓말로 죽은 줄로 알았습니다. 아들을 먼저 앞세운 어머니,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소망의 잃어버린 채 쏟아내는 탄식과 눈물입니다. 창 37:35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 할 큼 그 어떤 고통보다도 큰 상심의 마음이겠지요. 이스라엘이 그런 상황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완전한 절망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탄식하며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절정은 유기(遺棄-보호할 사람이 보호하지 않음, 내다 버림)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그 악함 가운데 내버려 두는 것처럼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에게 때때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아들’은 징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통곡과 환난으로 부르짖은 에브라임의 탄식을 들으시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자손을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들은 아픔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징계하시지 않았다면 더욱 교만하고 패역하며 멸망의 수렁으로 빠졌을 것입니다. 징계는 고통이지만, 악행을 발견하고 회개할 기회를 갖게 합니다. 
환난은 우리의 내면을 정화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면 환난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갖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 적용과 결단
고난 중에서 깨달은 주의 은혜가 있습니까? 지금 당하는 고난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 기도
주님, 실수가 많은 나에게 참사랑을 이루도록 인내하는 믿음을 주소서
○ 오늘의 기도제목
- 고난을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지혜를 주소서. 
- 온 세계 열방의 고통을 치유하여 주시고 헌신하는 자들을 지켜주소서
- 교회를 향한 악한 계획들은 막아주시고 교회도 세상을 진정으로 섬기게 하소서

3월 30일(월)  네 사랑을  내게 바치라

○ 사도신경 
○ 찬송 213장 나의 생명드리니
○ 성경 창 22:1-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

○ 묵상
내게 가장 소중한 그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나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만나 보지 못한 ‘최고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영어로 worship이라 하고 또는 예배를  service라 합니다.  
워십은 최고의 가치있는 대상과의 관계이며 가치있는 대상에게 행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서비스 즉 섬김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최고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이전에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버리고 발견한 가치와의 새로운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전에 소중했던 것을 버리는 것 또한 믿음입니다. 

마 13:14에 나오는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가 이를 잘 말해줍니다. 저희 아이들이좋아하던 찬양 중에 이 말씀으로 만든 찬양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 이라네. 그 보석 발견한 사람은 기뻐 뛰며 집에 돌아가 집팔고 땅팔고 냉장고 팔아 기어이 그 밭을 사고 말거야~ "

가장 귀하고 가치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그 가치를 소유하기 위한 버림을 마땅히 여기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상을 데리고 가서...”라고 하면서 “너의 사랑을 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가장 소중한 아들을 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저는 결혼 전과 결혼 후에 이 말씀이 주는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결혼 전에는 막연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는데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보니까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요구한 하나님의 명령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 역시 마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갈등을 넘어 즉각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순종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각도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도 포기하여 하나님께 바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받으시고 아들 이삭을 그에게 다시 안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순종과 사랑이 담긴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당신의 피조세계와 그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안에 감격한 우리는 마땅히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해야 합니다.  그 예배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 포기하고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만 순종하는 태도요 삶입니다.  오늘 주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 적용과 결단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렸던 적이 있습니까?  오늘 다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내가 바쳐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기도
주님,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게 하소서. 

○ 오늘의 기도제목
- 하나님을 내 삶의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코로나 19로 고통당하는 온 세계의 환자를 치유하여 주소서
-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일상의 삶이 회복되며 교회도 정상적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 43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를 돌보시고 더욱 부흥하게 하소서
- 성도들의 삶에 어려움을 살펴주시고 믿음으로 이겨나가게 하소서

  • 1오늘의 찬양 / 내가 주인 삼은

3월 28일 (토) 염려를 감사의 기도로 

○ 사도신경
○ 찬송 365장 (마음 속에 근심있는 사람)
○ 성경 빌 4:4-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6)

○ 묵상
불평과 불만을 가진 상태에서 기도해 본 적이 있나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강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염려가 없거나, 그에게서 시름과 걱정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부터 아주 사소한 것에 이르기 가지 헤아릴 수 없는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성경에는 ‘염려’에 대한 단어가 51번, ‘근심’에 대한 단어는 140번, ‘걱정’은 10번이나 기록되어있습니다. 또 염려와 비슷한 단어인 ‘두려움’은 무려 518번, ‘불안’도 9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염려와 불안 근심을 자주 언급하면서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이 같은 ‘염려’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은혜로 누리며 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염려 때문에 현재의 소중한 가치가 소멸되거나 사라지고 맙니다. 

요즘 뉴스에 코로나 만큼 뜨거운 뉴스가 박사방. n번방 이라는 끔찍한 뉴스가 나옵니다. 여기에 가입했던 한 40대 남성이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염려로 결국 현재의 삶을 포기했습니다. 앞으로 자신이 행한 일이 드러나고 조사 받는 과정의 괴로움 체면 수치 염려와 두려움이 현재의 생명의 가치를 포기하게 하는 결정을 하게 했을 것입니다.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교회 예배를 비롯한 현재의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예배의 중요함보다 국민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지금은 교회가 세상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일부 교회는 이는 교회를 향한 핍박이 시작되고 근거가 될까봐 염려하여 정부와 뜻을 같이하지 못하고 현재의 상황안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의 중요성과 간절함을 묵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오히려 교회를 향한 부정적이고 더욱 구체적인 통제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염려는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일의 가치와 간절함과 중요성을 약화시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염려를 기도로 바꾸라고 권면합니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 성경에서 이 본문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마음을 졸이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 대신 기도하십시오. 간구와 찬양으로 여러분의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하나님께 여러분의 필요를 알리십시오. 

믿음 없는 사람들이야 이런 상황들 앞에서 기도할 수 없기에 마음 졸이기를 멈출 수 없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염려할 수밖에 없는 많은 일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바울은 기도하되 불평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하라고 요청합니다. (6절의 말씀을 볼까요)
염려보다 감사로 필요를 구하며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과 더욱 깊은 사귐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적용과 결단
내가 염려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을 통해서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요? 감사로 기도해봅시다.

○ 기도
주님, 내 모든 염려를 감사함으로 주님께 온전히 맡기게 하소서. 
○ 오늘의 기도제목
- 우리의 모든 염려를 감사로 구하며 주님께 온전히 맡기게 하소서. 
- 교회의 여러 상황들과 정부와 세상의 요청 앞에서 우리가 원망과 불평으로가 아니라 감사의 간구로 기도하게 하소서 
- 주일 예배가 영상으로 드려지는데 우리 성도들이 삶의 자리에서 온전히 하나님만 예배하게 하소서
- 코로나19의 모든 상황이 주님 손길 안에서 속히 종식되게 하소서

3월 27일(금)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감사

○ 사도신경
○ 찬송 446장 주 음성 외에는
○ 성경 합 3:16-19 (구약 1305쪽)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18절)

○ 묵상
내 삶에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한가요? 

감사쏭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 그래도 감사, 그러나 감사 그러므로 감사 그렇지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러니까 감사 아주 그냥 감사 그리 하실지라도 감사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이래도 저래도 감사 매일매일 감사 항상 감사 쉬지 말고 감사 범사에 감사 "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음을 보여 주는 참 은혜로운 찬양입니다. 

오늘 말씀의 하박국 선지자를 만나 봅시다. 
고난 가운데 아무런 구원의 손길을 베풀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그는 환경보다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구원의 하나님께 믿음을 두고 고백합니다. 
상황보다 위대한 것,  환경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한분 만으로 충분하고 고백합니다.  (17-18절의 말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2:4절의 말씀을 보면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을 하박국은 받아들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형성되고 그리고 자라나고 확고히 세워져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롬 10:17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양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질적인 문제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믿음이 성장하고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철저히 신뢰하고 수용할 때 믿음이 성숙되고 깊어 집니다. 

서울 사랑제일교회가 계속 뉴스에 나왔는데 인터뷰가 가슴이 아팠습니다. 
도대체 왜 예배를 모여서 드려야 하냐고 기자가 묻자 한 여성 성도가 예배드리겠다는데 우리 자유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짜증과 화를 내며 대답을 합니다. 마땅한 대답을 할 게 없을 때 우리는 화부터 냅니다. 초등학생이 한 대 때리고 왜 때리냐 물을 때 내 자유야 라고 말하는 수준입니다. 

우리 교회들의 현주소입니다. 말씀에 굳게 선 하나님의 영적 진리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을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하박국의 믿음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까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 적용과 결단
불행한 상황가운데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나요?  오늘 나의 어려운 일과 그 일로 인한 감사의 고백을 적어보세요. 

○ 기도
주님, 나에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믿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 오늘의 기도제목
-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믿음,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빼앗기지 않는 믿음을 주소서
- 주님 말씀안에서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자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안에서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여 주소서
- 코로나19고 고통받는 세상에 대하여 우리 믿음의 진실함을 보여주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 바이러스와 백신이 속히 개발되게 하시고 모든 의료진에게 지혜를 더하여 주소서. 

3월 26일(목) 감사의 이유

○ 3월 26일 (목) 새벽 묵상
○ 사도신경
○ 찬송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 성경 시 107:10-22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21)

○ 묵상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찬송가 23장의 가사처럼 만 입을 가지고도 주님이 주신 은총을 다 찬송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른 찬송가 304장처럼 하늘을 두루 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우리에게 행하신 주님의 사랑을 다 기록 할 수 없습니다. 
요 21장25절에서는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그 많은 일들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다른 말로는 오늘 본문 21절의 ‘여호와의 인자하심’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숨 쉬며 살아갑니다. 
2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이것이 우리의 감사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많은 일들 가운데 좋은 것도 있지만,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봤을 때 불행해 보이는 일들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쳐온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목적에서든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든일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도 하지만 감사는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모든 일을 포함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작년 추수감사절에도 잠시 나눈 이야기죠?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가 이 말씀을 증명합니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삼남삼녀 중에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을 바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을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

손양원 목사님 고백을 보면 두 아들의 순교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생명의 복음이 퍼져 나가서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오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감사의 고백을 드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현재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사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니 그 또한 은혜요 사랑임을 믿고,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모든 일은 감사의 제목이며 이유입니다. 

○ 적용과 결단
나의 아픔과 불행한 일들을 감사의 고백으로 바꾸어 기도해 보세요
최근에 내가 감사한 일들을 돌아보고 그 이유를 찾아 보세요

○ 기도
주님, 내게 행하신 모든 일들을 인해 감사하며 찬송합니다. 

○ 오늘의 기도제목
- 주님 믿음의 눈을 열어 주의 뜻을 분명히 깨닫을 수 있게 해주셔서 모든 일에 감사하게 하소서
- 주님, 지금 온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을 겪습니다. 이일로 교회도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일로 교회를 바르게 하실 줄 믿고 감사합니다. 
- 주님, 코로나19를 속히 종식해 주시고, 사람들의 불안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소서. 

3월 25일(수) 감사하는 말

○ 사도신경
○ 찬송 429장 세상 모든 풍파

○ 성경 엡 5:4-1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4)

○ 묵상
최근 나에게 힘과 용기가 된 말은 무엇인가요?
말의 힘과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큽니다. 긍정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차원에서도 위력을 발휘합니다
본문은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빛의 자녀들에게 마땅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4절에서 오히려 감사하는 말이라 합니다 
감사의 말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작은 것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는 깊은 감사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 합니다. (햇살에게 중에서)

신앙의 성숙이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이 있는지 또 그의 입술에 감사의 말이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 적용과 결단
감사의 말, 사랑의 말, 축복의 말을 찾아 다른 이에게 전달해 보세요. 
○ 기도
주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 주시고 감사하는 입술이 도게 하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감사하는 말로 채우게 하소서. 
-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가 멈추고 있습니다. 주님 도와주셔서 회복되게 하소서 
- 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힘을 주소서. 
- 성도들의 기업과 삶의 모든 일상에 감사가 넘치게 하소서 

3월 24일(화) 나도 어루 만져주소서

○ 3월 24일(화)  새벽 묵상
○ 사도신경
○ 찬송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 성경 마 9:27-31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29)

○ 묵상
심리학자들은 포옹의 6가지 효과를 말합니다. 스트레스 감소, 심리적 안정, 혈압 안정, 심장 건강에 도움, 공포와 두려움 완화, 우울증 감소, 정신 건강 증진. 즉, 사랑으로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의학적인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중증환자와 어린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찾아가시고 초대하셨으며, 어루만져 치료하셨습니다. 특히 말씀만으로도 능히 그들을 고치실 수 있었지만 그들의 아픈 부위를 직접 어루만지심으로써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눈을 치료받으려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역경을 딛고 찾아온 한 사람은, 자신을 직접 만져주시는 예수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으로 눈이 밝아집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당한 모든 서러움까지 눈 녹듯 녹이는 사랑과 전인적인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이 오늘 나를 찾아 오신다면 어떤 부분을 만져 주시기를 원하시나요? 그것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오늘은 먼저 기도합시다. 

○ 적용과 결단
오늘부터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꼭 안고 사랑한다고 괜찮다고 잘될거라고 말해줍시다. 

○ 기도
주님, 주님께서 저를 만져주신 따스한 손길로 나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나도 아픈 자를 돌보며 살게 하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나의 상처와 아픔을 주님께 온전히 맡깁시다. 주님만이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 지금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온세계에 가득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돌보고 사랑하게 하소서. 
-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고 모든 일상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게 하여 주소서. 
- 성도들의 기업과 삶의 모든 일상과 건강을 어루만져 주소서.

3월 23일 (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 3월 23일(월) 새벽 묵상
○ 사도신경
○ 찬송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날)
○ 성경 골 1:9-2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3절)
○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순종)’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어떻게 다른가요?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신앙의 대명제를 자주 오해하곤 합니다. 
믿음을 ‘구원을 받는 조건’이나 수단으로 왜곡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마법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루터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번역했습니다. 문법상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기에 이를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롬 3:22, 갈2:16)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는 십자가에 순종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 나의 공로는 조금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에 힘입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 적용과 결단
오늘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한 사람에게 조건없는 선행을 베풀어 보세요

○ 기도
주님, 구속의 은혜에서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하소서

○ 오늘의 기도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순종만이 나의 구원의 길임을 알고 진리를 따르게 하소서.
- 코로나19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과 믿음없음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 코로나19로 삶의 위혐을 받고 있는 사회 취약계층을 돌보시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기게 하소서. 
- 코로나19로 성도들의 삶이 위축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삶의 자리에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영적예배자들이 되게 하소서.

3월21일 (토)   내게 맡기신 사명

○ 3월 21일(토) 새벽 묵상
○ 사도신경
○ 찬송 212장(겸손히 주를 섬길 때)
○ 성경 눅 22:24-34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29절)

○ 묵상
내게 맡기신 사명은 무엇인가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후에 섬김의 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상식적으로는 식탁에 ‘앉아서 먹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앉아서 먹는 자를 시중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주님의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29) 그런 제자들을 예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께 의탁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모든 고난에 함께 하것을 고백했지만 주님은 베드로가 부인하고 외면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다 아심에도 우리를 세우시고 우리에게 맡기십니다. ‘다 계획이 있으신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이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30) 

무엇보다 요즘같이 온 세상이 힘들 때 그 짐을 나누어 감당해달라고 부르짖는 세상을 향하여 그 나라를 함께 세워가자고 맡기시는 주님의 부르심과 사명 앞에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 적용과 결단
나는 섬김을 받는데 익숙한가요? 섬기는 자리에 더 익숙한가요? 나의 섬김의 모습 다섯가지를 적어보세요 

○ 기도
주님, 제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겸손과 지혜와 성령 충만을 주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오늘도 겸손히 세상을,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자로 살아가도록
- 바이러스 전파의 책임을 마녀사냥하듯 교회를 향한 정치적 수단으로 삼지 않게 하소서. 
- 내일 서림교회 성도들이 삶의 자리에서 살아있는 하나님께 참예배를 드리게 하시고 속히 회복되게 하소서
- 성도들의 건강, 직장과 사업장, 가족과 자녀들을 지켜주소서. 

3월 20일 (금) 새벽   보이지 않는 소망

○ 사도신경

○ 찬송 490장(주여 지난밤 내꿈에)

○ 성경 롬 8:18-25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18절)

○ 묵상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의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물장구 벌레가 어느날 연잎 뿌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올라간 벌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이상하고 안타가워 친구들끼리 “우리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자”고 약속을 합니다. 
어느날 그 중 한 마리가 연잎 뿌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연잎 그늘아래 잠시 머물다 허물을 벗고 잠자리가 되어서는 하늘을 날아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살게된 그들이 물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돌아갈 이유도 없었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궁극적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먼저 떠난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도 애써 들으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음에 대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 이미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친히 행하심으로 그 모든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소망 안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비록 현재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끝난 것이 아니고, 그 고난이 영원히 지속될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난은 반드시 지나가고 우리가 맞이할 영광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보여주심으로 반드시 이루시는 성경의 약속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활의 소망이 없기에 죽음의 공포 앞에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가 바로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9) 그렇게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는 그날을 바람으로 오래 참고 기다리며 살아갑니다.(25) 그 가운데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친히 간구하십니다.

○ 적용과 결단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환난이나 고난이 있나요? 회복되지 않는 실패와 상처가 있나요? 그 가운데 나에게 소망을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 기도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참된 소망을 바라며 참고 기다려 영광의 날을 맞이 하게하소서.

○ 오늘의 기도제목
- 현재 당하는 개인적인 고난, 교회적인 고난, 사회적인 고난을 통해 주의 영광을 날을 더욱 사모하게 하며 성령의 함께하심으로 극복하게 하소서. 
-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종식시켜 주시고, 고난 당하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소서. 
- 바이러스 감염으로 힘들어하는 교회들을 위로하시고 지혜롭게 잘 이겨나가게 하소서.
- 우리교회 성도들의 삶을 지켜주시고, 영적으로 약해지지 않게 하소서 

3월 19일 (목) 새벽  주께 열납되기를 

○ 사도신경

○ 찬송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 성경 시 19:1-14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4절)

○ 묵상
받아들여지지 않은 아픔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다. 거절당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의한 상처가 매우 크기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고 자신을 감추게 된다. 
반대로 받아들여진 경험은 햇볕과 같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햇볕이 비치면 그 따뜻함으로 인해 옷을 한 겹씩 벗어 버릴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때에 사람은 안전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말이다. 

학자들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면 뇌에서 객관적 현실을 담당하는 영역이 가능하고 제 3의 눈이 열려 지혜롭게 행동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생명 보호 시스템을 타고 나는데 이를 경험으로 얻게 된다. 

17세 소년이 고열과 폐렴증상으로 안타깝게 사망했는데 부모님은 아들이 코로나가 아니라서 경산중앙병원에서 치료를 거절당해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분을 토하고 있다.  (중앙일보 3월18일자)

주변의 상황으로부터 자신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불안감, 흥분, 경계심으로 사고 경직, 공격성, 반복적 실수 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진다. 반면 자신이 받아들여졌다고 느끼면 안정적이고 평안한 상태가 되고 자신도 알지 못했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하나님께 자신이 받아들여졌다는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근원적으로 새힘을 얻는 재 창조를 경험한다. 이것이 거듭남의 은혜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내 기도와 마음이 위대하신 그분께 전해졌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나의 반석이시고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님 앞에서 내 모든 것이 열납되었음을 믿고 새힘을 얻기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기독교를 향한 예배 중단의 요구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예배를 안드리면 진짜 목사 예배드리면 가짜 목사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그들이 교회에 안전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으므로 인해 더 큰 두려움과 그리고 분노로 교회를 향하여 강한 불만을 표현합니다.더구나 몇몇 지혜롭지 못한 교회들의 무모함이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감정을 갖게 함으로 그들이 분노하고 원망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금 오히려 교회에게 어려움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만큼 세상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품어 주어 두려움과 원망과 분노가 아닌 안정과 평안과 만족을 느끼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오늘도 정말 조심하며 주께 그들을 대신하여 은혜를 구하며 그들에게 신뢰를 회복하는 교회가 되도록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적용과 결단
내가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이 있나요? 또 내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나요? 

○ 기도
주님, 십자가의 은혜로 내가 받아들여 졌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주의 마음으로 용납하는 큰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소서. 

○ 오늘의 기도제목
- 세상에서 비록 거절당하는 아픔이 있어도 주님은 받아주시는 줄 믿고 주님앞에 기도하세요
-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가지는 거절의 상처를 이제 안심하며 평안하도록 품게 하소서
- 교회가 세상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율법이 아닌 복음과 사랑으로 지혜롭게 대처하게 하소서. 
- 성도들의 삶의 아픔과 상처를 환란과 어려움을 고치시고 돌보시고 위로하소서

소망을 이루는 삶(3.18 수)

○ 찬송 484장 (내 맘의 주여)

○ 성경 롬 5:1-11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절)

○ 묵상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소망은 무엇인가요? 

소망을 잃은 인간은 절망하고, 절망은 죽음을 불러옵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소망은 믿음의 미래에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란 구원의 완성,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이 땅에서 인내하도록 격려합니다. 인내가 소망을 낳고 소망은 다시 인내를 격려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여호와께 소망을 두어야 이 땅의 삶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나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 소망을 누구에게나 당당히 밝힐 수 있습니까? 아니면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습니까?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나 교회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의 소망을 품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영생의 소망을 품은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겠다는 소망, 주님과 화평을 누리려는 소망, 주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는 소망을 갖고 오신 주님처럼, 나도 이웃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십자가를 감내하는 인내의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생명을 다 마치기 전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 적용과 결단
교회와 이웃 그리고 시대의 상처를 위해 내가 인내하며 짊어져야하는 십자가가 무엇인가요? 

○ 기도
주님,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오늘의 기도제목
- 절망스러운 상황을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바라보며 인내하고 이기게 하옵소서. 
- 코로나19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세상을 치유하시고 인내하게 하옵소서. 
- 교회를 도우시사 세상을 섬기고 돌보는 일에 올바로 감당하게 하소서. 
- 성도들의 건강을 도와주시고 사명 앞에 순종할 때 성령의 충만을 주소서.